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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상처-응답
발신과 수신, 중간 배달의 무수한 반복 안에서 오배송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오배송의 반복에서 상처를 입는다. 상처는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이를 피할 수 없기에 우리는 그것을 견디는 방법을 찾아내고야 만다. 접근성은 무수한 조율, 협상, 타협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무수히 부딪히는 경험이고, 따라서 다른 이들로부터 상처를 입는 일이기도 하다. 상처를 입는다는 것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나에게 틈새가 생긴다는 것이다. 바로 그 틈새는 또 다른 우편이 꽂힐 수 있는 자리가 된다. 언제 올지 모를 나의 우편을 기다리며 나는 영영 그 틈새를 완전히 메우지 못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편이 도착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것은 그 자체로 오지 않는 우편에 답장을 쓰는 하나의 방식이다. [더 읽기]
일상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가치화 장치들이 경제와 도덕이 겹치는 방식으로 맞물리는 자리에서 작은 개인들은 종종 갈피를 잡지 못했다. 불안정과 안정의 생산에 관한 인류학적 작업을 통해 발견한 것은 탈출구나 해법이 잘 보이지 않는 ‘곤란’이라는 자리가 특정한 구조의 의도가 그대로 실현되지 못한 흔적이기도 하다는 사실이었다. 곤란 속에는 체념과 무력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조에 대한 불신과 거부 또한 존재했다. 그렇다면 구조와 개인 사이의 늘 일관되지는 않은 역동을 통해 구조의 지속 불가능성을 드러내고, 나아가 곤란의 바깥을 차근차근 그려 볼 수도 있을까. 현장에서 출발해 이론에 닿고, 이론을 딛고 다시 현장으로 향하는 인류학적 연구가 기여할 지점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더 읽기]
가치들의 긴장을 조율하기
본 연구는 가치들이 어떻게 시장에서 생성⋅평가⋅실행되는지, 거기서 권력과 자원은 어떻게 재배치되는지, 그리고 출판인이 어떻게 시장에서 주체화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때 출판 시장에서 가치화가 주체화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두터운 탐구는 이중행위자로서의 출판인이 처한 곤란을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본 연구에서 직접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출판이 만들어내는 ‘가치’가 무엇인지 판단하는 평가 기준, 혹은 가치 체계 자체에 개입하여 그것을 이루는 기존의 시장 장치들을 다른 방식으로 배치하고 작동시킬 때 생길 수 있는 다른 주체화의 가능성 또한 암시한다. 가치 평가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그 기준이 되는 가치 체계를 작동시키는 장치들을 변형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안에서 가능한 피투자자 정치의 핵심 중 하나일 것이다. [더 읽기]
사랑은 망한다: 장르의 잔여, 붙잡을 수 없는 욕망
열애설은 ‘논란’의 한 유형이다. 논란은 케이팝 아이돌 아티스트들과 관련된 혼란이 처리되는 특정한 방식이다. 달리 말하면, 논란은 혼란에 질서를 부여해서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하나의 안정화 장치이고, 따라서 패턴 내지는 문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논란은 혼란스러운 현상 안에서 대중과 팬덤, 주류문화와 하위문화 사이를 나누는 경계를 구성하는 작용이다. 동시에, 논란과 관련된 영상이나 게시물에 달리는 댓글 속 ‘팝콘 각’, ‘설레는 댓글창 열기’와 같은 표현들에서 드러나듯, 사람들은 논란을 즐기기도 한다. 논란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 의해 소비될 수 있는 하나의 장르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케이팝 아이돌의 논란이 작동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장르라는 개념에 개입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다. 장르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글은 결국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좌절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따라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더 읽기]
제약을 뚫는 제약
감각 횡단은 소통을 향한 반복되는 시도가 감각들 사이의 경계를 허물 뿐 아니라 새롭게 짓는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서 제약은 장벽을 없애야 한다는 선언이나, 결국 다가갈 수 없는 지점에 대한 인정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실패를 체념의 계기가 아니라 경계를 넘어선 소통을 이끌어내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불가능에 대한 인정은 기존의 제약 안에서 감각과 매체를 재배열하면서 어떤 틈을 상상해낼 수 있는 새로운 소통의 시작이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전달되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분위기나 닿으려는 노력의 흔적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감각 횡단에서 어떤 세계가 이끌려 나온다는 사실이다. 횡단을 통해 열린, 낯선 소통이 이루어지는 잠깐의 세계. 그리고 그 세계는 다시금 허물어질 것이다. 제약을 뚫는 제약들의 반복, 그 반복이 이끌어낼 또 다른 잠깐의 세계를 통해. [더 읽기]
인류세 미술, 돌의 매혹
돌은 플라스틱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새로운 돌이 되고, 위협적인 외계 광물이 데이터 사이로 들어와 섬의 일부가 되게 해주었다. 동시에 돌은 세계를 감추어 자신만의 쾌락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도피처조차 잠시 머물 수 있는 하나의 집이기에, 돌은 집이다. 극단적인 와이드샷이나 클로즈업, 초현실적 컴퓨터 그래픽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으로 우리는 도피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어떤 돌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예술은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의 집을 만든다. 어떤 순간에, 우리의 피부는 돌이 되고 집이 되어 우주를 향해 고개를 든다. 그리고 우리가 딛고 사는 이 거대한 돌을 굴리는 대신, 비로소 돌볼지도 모른다. […] 미술관에서 무너진 세계를 본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매혹과 참혹 사이에서 세계를 다시, 짓기. 내 머리 위에 올려두고 소유할 수 없는, 우주이기도 하고 피부이기도 하고 집이기도 한 돌들을 만지작거리며. [더 읽기]
ongoing
인문 교양 에세이 <자기 비평>(문예출판사)
upcoming books
에세이 <아무튼, 배드민턴>(위고) (26년 10월)
논픽션 앤솔러지 <알고리즘의 자식들>(마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