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편집 이전의 원고입니다.
최근 문화예술계에서는 장애인 접근성이 점점 더 진지하게 고려되어 왔다. ‘장벽을 없앤다’는 의미의 ‘배리어 프리’부터 ‘그럼에도 존재하는 장벽을 의식하며 노력한다’는 의미의 ‘배리어 컨셔스’까지, 접근성은 ‘정당한 편의’나 ‘접근성 매니저’와 같은 형태로 등장했다. 이것은 장애인의 몸이 아닌 주변 환경을 ‘장벽’으로 규정하는 장애의 사회적 모델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런 흐름 안에서 접근성을 부차적인 옵션이 아니라 작품에 통합하려는 시도들 또한 이어질 수 있었다. 접근성이 보완을 넘어 기존의 미적 체험을 대체하고 그 전제가 되는 몸을 재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실천이 되는 과정을 나는 ‘감각 번역’이라고 불렀다.
2019년 9월 팩토리2에서 진행된 오로민경 작가의 개인전 《영인과 나비: 끝의 입자 연구소에서 온 편지》에서는 무선 헤드셋을 착용하고 전시관 안을 걸으면 관람자가 있는 위치에 따라 그 앞에 있는 작품을 음성으로 묘사해 주었다. 이것은 시각 정보를 청각으로 온전히 전달하면서도, 조형이나 이미지를 언어화했을 때 전시 관람 순서를 제약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별 작품이 아닌 전시 자체를 청각적으로 번역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2024년 11월 탈영역우정국에서 진행된 전시 《스팟라이트, 평평한 무덤들에게》는 그 자체로 감각 번역의 연행(performance)이었다.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대본으로 쓰는 일과 그 대본으로 이루어지는 배우들과 관객들의 공동 연행이라는 이중의 감각 번역은 작품의 묘사를 넘어 전시의 체험 자체였다. 감각들은 설명되기보다 회화, 조형, 영상, 연기라는 이질적인 예술 형식들로 인해 범람했고, 관객이 작품을 만지고, 밟는 것과 같이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운 촉각으로 모여들었다. 감각 번역이라는 실천을 촉각적 작품으로 삼은 것이다.
감각 번역의 시도들은 접근성을 동등하게 투명한 정보의 전달에서 동등하게 불투명한 미적 체험으로 재구성해 왔다. 최근 팩토리2에서 진행된 사진 작가 박현진의 개인전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은 이 흐름을 감각들의 경계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간다. 박현진은 보편적 접근성을 지향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아인투아인의 조향사 김준범과의 협업을 통해 묻는다. 감각들 사이의 경계, 소통의 한계는 당연한가? 김준범은 향수로 특정한 경험을 전달하고자 촉각을 온도, 경도, 움직임으로 세분화한다. 박현진은 그 경험을 시각적으로 연출하여 촬영하거나, 김준범의 향료를 필름 숙성 용액으로 현상 과정에 활용해서 하나뿐인 이미지들을 이끌어내고, 선별하고, 인화했다. 코 점막에 묻었으면 향이 되었을 향수는 필름의 감광물질과 만나 우연한 이미지가 된다.
향수는 촉각과 후각을, 사진은 시각을 소통의 경로로 삼으면서 다른 감각으로 소통될 가능성을 상실한다. 소통이 언제나 특정한 형식으로 경험을 잘라내는 매체로 이루어지므로, 소통은 제약이다. 박현진은 향수의 촉각적, 후각적 소통을 사진을 통해 시각적으로 확장하지만, 사진 역시 시각이라는 또 다른 제약 안에 있다. 그러나 소통이 제약이므로 제약은 또한 소통이다. 사진에 대한 관객의 묘사가 대체 텍스트로 개입하며 개시되는 ‘경험→향수→후각→사진→시각→문자→촉각→향수→후각→…’이라는 감각적·물질적 연쇄에서 향수, 사진, 문자는 그때마다 감각 사이의 경계라는 제약을 구성하지만, 그러한 제약으로 그어진 경계를 넘나드는 소통, 즉 제약의 소통을 동시에 이루어낸다.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은 바로 그러한 제약의 소통, 혹은 제약을 뚫는 제약으로서의 감각 횡단과 그것이 가능한 잠깐의 세계를 보여준다. 감각 횡단은 소통을 향한 반복되는 시도가 감각들 사이의 경계를 허물 뿐 아니라 새롭게 짓는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서 제약은 장벽을 없애야 한다는 선언이나, 결국 다가갈 수 없는 지점에 대한 인정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실패를 체념의 계기가 아니라 경계를 넘어선 소통을 이끌어내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불가능에 대한 인정은 기존의 제약 안에서 감각과 매체를 재배열하면서 어떤 틈을 상상해낼 수 있는 새로운 소통의 시작이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전달되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분위기나 닿으려는 노력의 흔적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감각 횡단에서 어떤 세계가 이끌려 나온다는 사실이다. 횡단을 통해 열린, 낯선 소통이 이루어지는 잠깐의 세계. 그리고 그 세계는 다시금 허물어질 것이다. 제약을 뚫는 제약들의 반복, 그 반복이 이끌어낼 또 다른 잠깐의 세계를 통해.
* 아래는 박현진 개인전에 국한된 버전의 원고입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 감각들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감각들 사이의 경계는 당연한가? 하나하나의 감각은 오히려 복합적인 감각으로서의 경험을 소통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비로소 구분되는 것이 아닌가? 사진작가 박현진의 개인전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은 향수와 사진을 매개로 후각을 시각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담아냄으로써 소통이 감각들의 경계를 짓고 허무는 행위라는 사실을 전시라는 잠깐의 세계를 통해 보여준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어떤 소통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세계를 이끌어내면서.
경험에서 시각적인 것과 후각적인 것과 촉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은 한데 섞여 있으나, 소통을 위해서는 경험을 이루는 구성 요소들을 분리해야 한다. 소통은 언제나 특정한 매체로 이루어지고, 각각의 매체는 특정한 형식으로 경험을 잘라내어 소통한다. 그러한 소통을 위한 형식이 바로 감각이기에, 감각들의 분리와 그에 따른 제약도 소통의 매체에 의해 이루어진다. 향수는 촉각과 후각을, 사진은 시각을 소통의 경로로 삼으면서 다른 감각으로 소통될 가능성을 상실한다. 하나의 소통은 언제나 다른 소통들을 제약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소통은 제약이다.
박현진은 보편적 접근성을 지향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아인투아인의 조향사 김준범과 협업하며 감각들의 경계를 탐구한다. 김준범은 향수로 특정한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촉각을 온도, 경도, 움직임으로 세분화한다. 박현진은 김준범이 재현하고자 한 경험에 대한 설명을 토대로 연출하여 촬영하고, 김준범이 만들어낸 향료를 필름 숙성 용액으로 현상 과정에 활용해서 그것으로부터만 만들어지는 우연한 이미지를 선별하고 인화했다. 여기서 코 점막에 묻었으면 향이 되었을 향수는 김준범의 설명과 함께 연출된 장면이 되거나, 필름의 감광물질과 만나 필름에 비가역적인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
향수라는 매체를 통해 촉각적으로 제약된 경험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시각적으로 확장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은 시각이라는 또 다른 제약 안에 있다. 그러나 소통이 제약이므로 제약은 또한 소통이다. 경험이 향수를 통해 후각이 되고, 이것이 사진을 통해 시각으로 대체되고, 사진에 대한 기획자의 대체 텍스트와 관객들의 묘사를 통해 언어가 되고, 이것이 다시 김준범에 의해 촉각적으로 해석되어 향수라는 후각이 된다. 여기서 향수, 필름 사진, 언어라는 매체들은 그때마다 시각과 후각 사이의 경계, 즉 소통의 제약을 구성하지만, 그러한 제약을 통해 그어진 경계를 넘나드는 소통, 즉 제약의 소통을 이루어낸다.
전시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러한 제약의 소통, 혹은 제약을 뚫는 제약이며, 그러한 소통을 구성하는 여러 행위자의 매개가 이끌어내는 시각과 후각 사이의 소통이 가능한 세계다. 감각 번역이 하나의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바꿈으로써 기존의 소통에서 배제된 이들에게로 소통을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일 때, 감각 횡단은 소통을 향한 반복되는 시도가 감각들 사이의 경계를 허물 뿐 아니라 새롭게 짓는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서 소통의 제약에 대한 인정은 어떤 감각으로 틀지워진 경험이 다른 감각으로 전달될 수 없다는, 결국 다가갈 수 없는 지점에 대한 인정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실패를 체념의 계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경계를 넘어선 소통을 이끌어내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불가능에 대한 인정(recognition)은 소통의 실패에 대한 재인식(re-cognition)이 아니라 기존의 제약 안에서 감각과 매체 사이의 관계를 조금씩 재배열하면서 어떤 틈을 상상해낼 수 있는 새로운 소통의 시작이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때로 전달되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분위기나 닿으려는 노력의 흔적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에서 어떤 세계가 이끌려 나온다는 사실이다. 횡단을 통해 열린, 낯선 소통이 이루어지는 잠깐의 세계. 그리고 그 세계는 다시금 허물어질 것이다. 제약을 뚫는 제약들의 반복, 그러한 반복이 이끌어내는 또 다른 잠깐의 세계를 통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