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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절과 생성

분류
전시
역할
토크 패널
기간/날짜
2025/11/22
주관
박현진 개인전, 김재아 기획 (팩토리2)
행사/채널/작품
<감각 Tran-sense-lation 횡단>
* 이 글은 전시 연계 프로그램 <횡단적 시작: 시각과 후각을 잇는 사진들>에서 인쇄물로 배부되었습니다.

횡단

재현(representation)이 특정한 해석과 변형을 거치면서도 어떤 상황에 대한 자신의 느낌에 가까운 경험을 전달하고자 하는 다시-보여주기(re-presentation)라는 점에서, 재현은 불가피한 변형을 전제하면서도 재현의 대상과 재현의 결과 사이의 일치, 혹은 반영(re-flection)으로서의 재현의 결과를 추구한다. 김준범이 향을 통해 수행하는 기억의 후각적 재현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반영을 추구하면서도 후각이라는 하나의 감각을 전달할 수 있는 향이라는 매체에 여러 감각을 모두 실어날라서 비슷한 경험을 전달해야 한다는 데서 오는, 여러 감각을 하나의 감각으로 번역하는 데서 발생하는 차이다. 오직 향만으로 그는 분위기, 테이블의 질감, 당시의 음악과 사람들의 소음 같은 것들의 총체로서의 환경을 전달해야 하며, 여기서 반영은 의도에 포함될지언정 (결코 충분히 달성될 수 없으므로) 유일하게 추구될 수는 없는 목표가 된다. 여기서 재현은 단순한 모방도, 현실의 반영도 아닌, 대상과 결과, 만드는 이와 경험하는 이 모두가 약간씩의 변형을 겪는 재해석과 재창조다. 이때 재현은 반영을 추구하는 번역의 한 유형으로 재개념화될 수 있다.
이제 핵심은 확장이다. 경험과 감각, 감각과 감각이 향을 매개로 넘나들기를 반복하는 쌍방향의 과정, 즉 감각 횡단을 통해서만 어떤 경험은 여러 감각으로 되살아나서 전달되고, 소통될 수 있게 된다. 재현이 일치성에 좀 더 방점을 찍는다면, 횡단은 확장성에 좀 더 방점을 찍는다. 다시는 그대로 살아날 수 없는 어떤 기억들이 감각의 분리와 감각 사이의 오감을 통해 구성된 향수를 매개로, 그것이 각자의 코 점막의 후각 세포에 접촉하여 구성된 향으로 전달된다. 의도와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러나 배합물 속 향료들의 비율이나 숙성의 시간 등의 화학적 과정에 의해 의도대로 나오지는 않는, 그럼에도 우연히 발견되는 비율을 통해 향은 만들어진다. 김준범이라는 한 사람의 경험과 기억을 재현한 처음 맡는 향이 낯설지 않고 오히려 익숙한 어떤 느낌, ‘아, 뭔지 알 것 같아요!’로 느껴질 때, 겪어 본 적 없는 타인의 감각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내가 이미 겪어 본 것처럼 느껴지는 무언가가 되어 버린다. 향은 감각의 데자뷔를 생산한다.
박현진은 이 지점에 두 경로로 개입하여 또 다른 재현을 시도한다. 하나는 김준범이 재현하고자 한 경험과 기억에 대한 설명을 토대로 연출된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준범이 만들어낸 향료를 현상 과정에 활용해서 그것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이미지를 선별하고 인화하는 것이다. 즉, 그는 사진을 제작하는 두 가지 경로에서 각각 재현의 대상과 재현의 결과를 공유하면서, 반영으로서의 번역과 횡단으로서의 번역을 시도한다. 필름 사진을 인화한다는 같은 프로세스를 거치지만, 재현의 대상을 공유하는 경로에서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사물들의 배치가, 재현의 결과를 공유하는 경로에서는 향료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이미지를 현상하기 위한 필름의 숙성이 이루어진다. 경험은 향수를 매개로 촉각과 후각이 되고, 그것은 다시 필름을 매개로 시각이 된다.
여기서 필름의 숙성은 사진의 현상 과정 자체에 변형을 가함으로써 반복될 수 없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이다. 박현진은 사진을 촬영하는, 즉 필름의 감광 물질에 빛이 접촉하도록 노출되는 셔터의 순간 이후에, 그러한 노출을 자국으로 보존하는 필름을 김준범의 향수에 담근다. 원래 바로 현상액에 적셔졌어야 할 필름은 향수를 입고, 코 점막에 묻었으면 향이 되었을 향수는 필름의 감광물질과 만나 특정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면서 필름에 비가역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빛을 찍었기 때문에 그대로 인화했으면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이미지가 되었을 필름의 잠상은 향료로 인해 변형된다. 여기서 향수(perfume)는 ‘향(scent)’ 대신 ‘상(image)’을 만드는 것으로, 오히려 현상액이나 정지액과 같이 상을 생산하는 장치로서 하나의 ‘용액’으로 작동한다. 시각을 후각으로 번역한 것이 또 다른 시각을 생산한다. 시각과 후각은 향수와 필름 사진을 매개로 넘나들며 하나의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표현하는 일, 나아가 경험 혹은 기억을 서로 다른 하나씩의 감각만으로 표현할 때 생기는 차이들, 즉 감각들 사이의 경계의 필연성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횡단은 회절이다.

우연

여기서 감각들 사이의 넘나듦, 즉 감각 횡단이 경계의 필연성에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향료들의 배합을 통해 생산된 향으로도, 필름의 숙성 과정을 거쳐 생산된 상으로도, 별도의 설명이 없으면 그것이 재현하고자 한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향료들의 배합물과 감광한 필름이 공유하는 숙성이라는 화학적 과정에 내재한 우연성 때문이다. 숙성을 거쳐 제작된 향수와 사진은 각각 레시피와 디지털화를 통해 복제 및 반복 생산이 가능해지지만, 숙성은 그 결과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도록 만든다.
향수를 만들 때 숙성이 필수적인 과정인 반면, 필름의 현상에서 향수에 필름을 숙성시키는 것은 필수적이지 않다. 이때 박현진은 김준범의 향수가 매개하는 경험과 향을 필름 사진이라는 장르를 통해 전달하고자 숙성을 필수 과정으로 만듦으로써 숙성에서 비롯되는 우연성을 사진 제작 과정에 기입한다. 한 번 사용한 필름을 재사용할 수도 없고, 설령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화학 작용 전체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상은 똑같이 반복될 수 없다. 이때 기술 복제 가능 시대를 열어젖힌 사진은 반복의 불가능성 위에 다시 정초된다. 여기서 사진은 한눈에 파악되는 투명한 반영적 소통이 아니라, 보기만 해서는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파악할 수 없는 불투명한, 골치아픈(troubling) 소통의 매체가 된다.
감각의 분리와 경계 짓기는 애초에 소통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하나의 경험은 내부로부터 여러 감각으로 분리되어 특정한 감각만으로 소통될 수 있는 형태가 된다. 이렇게 소통을 목표로 구성된 경계는 언제나 다른 소통을 폐제한다(foreclose). 사진은 시각만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하고, 향수는 후각만으로 파악될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는, 감각의 일치를 당연하게 전제하는 소통은 하나의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변형하여 이루어지는 소통을 불완전하고 부족한 것으로 이해하면서 불가능한 것으로 단정짓는다. 감각 번역은 바로 그 소통을 확장하고 재개하려는 시도이며, 감각 횡단이란 어떤 소통을 가로막는 감각들 사이의 경계를 재편하는 과정이다. 우연성을 내포하는 숙성의 과정에서 향수에 부여된 특정한 기억과 감정, 혹은 경험이라는 의미는 시각적 소통을 위해 필름 사진이라는 사물로 빚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번역의 결과일 뿐 아니라, 또 다른 번역의 계기라는 점에서 또한 횡단이다. 횡단은 경계를 파괴하는 것이기보다 만들어진 경계들을 허물고 조금 다른 모양으로 다시 짓는 작업, 즉 새로운 분리를 위해 반복되는 내부-작용이다. 박현진의 사진은 기획자 김재아에 의해 대체텍스트로, 즉 시각적 연상을 가능하게 하는 글로 번역된다. 하지만 이 대체텍스트는 작품에 대한 설명의 역할이 아니라, 시각장애인 관객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으로서 하나의 묘사를 제공할 뿐이다. 박현진의 필름 사진은 전시 과정 중에 있는 두 번의 관객 참여 프로그램에서 관객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묘사되어 언어로 김준범에게 전달되고, 이것이 다시 향수로 만들어진다. 단번에 이해할 수 없는 이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시각에서 후각으로의 횡단이 이번에는 관객들의 말들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의미가 사물을 만들어내고, 사물은 의미를 담아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필름 사진은 입방아에 오르며 감각 사이의 경계에 관한 골치아픈 대화의 장이 된다. 우연성 안에서 물질들이 일으키는 의미와 감각들의 파동이 서로를 변형시키며 새로움을 낳는다. 우연은 생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