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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五感: 혜화-이음-카페

분류
전시
역할
기간/날짜
2022/09/16 → 2022/09/30
주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행사/채널/작품
노리미츠인서울 2022: 이음으로 가는 길
오감/五感: 혜화-이음-카페
2022년 8월 3일, 기온 29~31도. 대체로 흐림.
무게와 감각을 조절하며 혜화역과 이음 갤러리 사이를 오감. 카페를 경유. 무게와 감각의 조절로 오감은 미세하게 다른 형태로 다른 것들에 감응. 오감과 감응에 대한 기록. 단지 8월 3일에 대한 기록만이 아닌, 그 전후로 혜화와 이음 갤러리 사이를 오간 경험들을 8월 3일의 기록에 겹쳐둠. 다수의 경험들과 시간들은 하나의 글로 중첩됨.
13시 50분에 도착하기
뒷목과 옆얼굴을 덮는 검은 머리, 바지, 티셔츠, 카드지갑 목걸이, 마스크, 손목시계, 에어팟 2세대, 가방
버스를 탄다. 저상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다 보니 버스 내부 전광판에 글자가 뜬다. 이번 정류장, 방송통신대, 이화장. 내릴 채비를 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들어 손잡이를 잡는다. 방송통신대학을 지나친다. 아직 한 정거장 남았다. 마로니에 공원에 가까워지고 세 명이 더 일어나 버스 뒷문 앞에 선다. 하차를 위해 카드를 찍는다. 카드가 잘 찍혔는지는 눈으로 확인하는 편이다. 태그 기계에 뜨는 초록색 불빛.
“오늘 같은 달콤한 날에는 / 그리는 어디든 / 좋아 Sunny Afternoon Afternoon / 내 안에 온 파도 / 너를 닮은 온도 / 모두 완벽한 거야 / 또 너라서 난 / 잊지 못할 Sunny Sunny Afternoon”
귀는 에어팟에서 나온 음악으로 채워진다. 귀가 아주 꽉 막히지 않아서 바깥의 소음이 음악과 섞인다. 그리 맑은 하늘도 아니고 대단히 달콤한 날도 아니지만 아무튼 밝은 오후. 언제 소나기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지만 아무튼 밝은 오후. 버스 문이 열리는 순간 공기가 혼잡하게 뒤섞여 쾌와 불쾌의 난기류를 일으킨다. 온도의 차이가 내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함을 느끼게 해준다. 쇠로 된 쓰레기통과 허가 받은 노점상 사이로 나오며 버스에서 내린다. 몸이 느껴진다. 덥다. 답답하다. 뻣뻣하고 까슬까슬한 바지와 얇고 하늘하늘한 티셔츠의 촉감이 유독 두드러지게 충돌한다.
목에 건 카드 지갑이 걸리적거리기 시작한다. 왼쪽 손목의 시계는 메탈 소재라 차가워서 덜 무겁게 느껴진다. 어깨도 갑자기 무겁다. 내 가방은 양쪽의 질감이 다르다. 대체로 바지랑 비슷하게 까슬거리는 촉감이지만, 오른쪽 어깨에 닿는 부분은 헤져서 수선했다. 입다가 찢어진 청바지의 일부를 잘라서 헤진 부분을 덮었다. 겨울용 청바지는 안감이 도톰하고 부드럽다. 오른쪽 어깨가 유독 덥다. 온도와 무게감이 동시에 내 몸을 휘감는다.
마로니에 공원에는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어차피 행선지는 이음갤러리다. 장애인문화예술원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하나님을 믿으라며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이 결연하고 더운 표정으로 서 있다. 이들은 때로 마로니에 공원 바로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음악이 귓속을 채운 채로 나는 근처 바닥과 비슷한, 다소 탁한 붉은 빛의 작은 벽돌들로 세워진 이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건물로 향한다. 이 건물에는 큰 창문이 9개 있고, 각각의 큰 창문은 열리지 않는 넓은 유리와 세로로 열리는 작은 창문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두 사람이 높은 사다리에 올라 무언가를 수리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옆의 계단을 오른다.
자동문. 버튼. 카페 직원들과 경비노동자. 대여할 수 있는 수동휠체어들. 넓은 공간에 가득한 쾌적한 공기. 매끈한 바닥을 걸어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문이 열린다. 분명 바람은 나오지만 어딘지 모르게 답답한 공기. 2층. 문이 닫힙니다. 들어온 방향 그대로 문이 다시 열린다. 붉은 벽돌 벽을 지나 새하얗고 매끈한 벽이 나타난다. 이음 갤러리다.
기록할 공간을 찾기
이음갤러리 문 바로 근처 세 칸의 앉을 자리. 갤러리에 들어가지 않고 그중 가장 바깥쪽에 앉아 노트북을 펼침. 붉은 벽돌 벽 앞에서 나는 버스에서 내려 여기까지 오는 짧은 길을 최대한 상세히 기술. 기록을 일단 마치고 다시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하강. 좀 더 안정적인 자리가 필요.
카페마다 사람이 가득. 찾은 자리는 장애인문화예술원 1층 모리셔스브라운의 창가 자리. 높음. 휠체어에 맞는 자리는 생각보다 적음. 테라스로 가는 길도 계단. 오미자에이드를 주문. 아무리 관해기여도 크론병 환자에게 커피는 썩 좋지 않음. 달고 새콤한 맛이 입안에 퍼짐. 노트북을 켜니 아까 쓴 게 하나도 안 보임. 날아감(방금 당신이 읽은 글은 하나의 경험을 두 번째 쓴 결과물).
짐을 놓고, 귀에서 음악을 뺀 채 마스크를 다시 끼고 밖으로 나감. 자전거는 훔쳐가도 노트북은 건들지 않는 기묘한 민족성을 믿어봄.
14시 55분에 도착하기
뒷목과 옆얼굴을 덮는 검은 머리, 바지, 티셔츠, 카드지갑 목걸이, 마스크, 손목시계
문을 열고, 계단과 경사로를 차례로 걸어 내려가 다시 도로로 간다. 아까 본 노점상에는 ‘Haechi Shop’이라고 적혀 있다. 담배, 복권, 얼음물과 음료수를 판다. 사장님은 다소 피로해 보인다.
거리에 가득한 차 소리와 제대로 분간되지 않는 말소리들. 양산을 쓴 사람들과 떠나는 파란 버스들. 사람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썼다. 맞은편 거리에는 목탁을 치며 불경을 외는 스님. 그의 소리는 차들이 내는 소리에 묻힌다. 나는 그의 소리를 그의 움직임으로 본다. 목탁을 두들기는 오른팔과 숙인 고개, 작게 보이는 입의 움직임. 멀리서는 차의 경적 소리. 하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건 사람도 기계도 아니다.
매미. 매미가 세차게 운다. 길 건너 서울대학교병원 앞에 대략 세 마리 정도가 돌림노래를 부르듯 따로 또 같이 운다. 가까이서도 소리가 들린다. 마로니에공원 쪽에도 두 마리 정도가 있는 것 같다. 도시 매미가 우는 소리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소리만큼, 혹은 그보다도 크다고 한다. 도시가 아닌 곳에서처럼 울면 짝을 찾을 수 없어서. 그래서 매미 소리는 자동차 소리를 압도한다. 그래야만 한다.
짝을 찾는 매미들, 이 더위에도 손을 꼭 붙들고 걷는 연인들. 조금 전에 마스크를 쓰고 내 앞을 지나간 사람은 이번에 마스크를 벗고 반대 방향으로 다시 내 앞을 지나간다. 아까의 나처럼 이어폰을 꼽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듯하다.
길에는 사람이 가득한데 가장 또렷한 건 매미와 버스의 소리다. 때로 버스는 한숨을 쉬듯이 딱히 건강에 좋을 것 없을 공기를 푸- 내뿜는다. 그 옆으로 유아차에 탄 아이가 높은 톤으로 엄마에게 무어라 말을 건넨다. 웃고 있는 엄마. 그 웃음이 아이 때문인지 잠시 구름이 해를 가려준 덕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매미 소리는 장애인문화예술원 건물의 계단을 오를 때까지도 들린다. 계단까지는 반쯤 열린 건물이다. 건물 안에 들어오니 마로니에 쪽 매미들의 소리와 카페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가 겹친다. 이번에도 역시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엘리베이터 효과음]. 2층입니다. 앞문이 열립니다. 사람이 없다. 마스크를 뚫고 무언가 새어 들어온다. 마스크를 잠시 내린다.
청결하게 향기롭다. 청결한 냄새. 청결의 냄새? 방금 정리한 공간의 냄새. 개운한 냄새? 향기? 나는 화장실에 들어간다. 화장실 탈취제를 찾는다. 의심이 맞을지도 모른다. 화장실 항균기기는 문 바로 앞에 붙어 있다. 그 탈취성분이 복도까지 흘러나온 듯하다. 아 맞다, 이음갤러리는 저기 옆에 있다.
화장실과 엘리베이터 사이에 홀로 선다. 갤러리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와 음악이 나에게까지 도달하면서 흐릿해지고 나는 바로 그 흐림을 듣고 화장실의 환풍기 소리와 그 밖에서 들리는 매미들의 울음이 물품보관실과 계단의 문을 여닫는 청소노동자의 소리와 겹쳐지면 나는 바로 그 겹쳐짐을 듣는다. [아주 옅은 엘리베이터 효과음] 앞문이 열립니다. 문 밖에서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1층, 앞문이 닫힙니다. 1층입니다. 앞문이 열립니다.
2층에서 코가 열린 걸까? 1층에 도착하자 구강세정제에서 날 것 같은 날카롭게 상쾌한 향이 가득하다. 귀에 음악을 채우고 다닐 때는 몰랐다. 방금 2층에서 계단으로 내려온 청소노동자 분이 나를 보시더니 흠칫 놀라시고 가던 길을 간다. 한 사람이 계속 건물을 들락날락하니 경비노동자 분이 내게 시선을 보낸다. 나는 애써 모른 척 하고 핸드폰으로 감각들을 기록한다.
다시 내가 짐을 둔 카페에 가까워질수록 단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자리에 앉아 오미자에이드를 마신다. 단 맛. 쨍한 단 맛은 얼음이 녹아서 덜하다. 나는 시리를 켠다. “이 노래 뭐야?” 핸드폰은 3~4초 정도 동안 사람 목소리와 음악 소리를 분리해내고 대답한다. <Break My Heart Myself>.
나는 마지막으로 음악을 피하고, 이번에는 무게도 최소화하고 밖으로 나간다. 시계와 카드지갑은 가방 안에 넣어 둔다.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하여 마스크는 손목에 낀다.
15시 20분에 도착하기
뒷목과 옆얼굴을 덮는 검은 머리, 바지, 티셔츠
젖은 냄새. 약간의 물 지린내. 테라스의 우레탄 바닥이 젖어서인지, 그 앞의 커다란 나무와 그의 터전이 젖어서인지는 알 수 없다. 젖은 나무의 아주 진한 갈색이 초록색 한 중년남성이 앉아 있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일어선다. 그는 마스크를 턱에 걸치고 막걸리를 마신다. 그러나 별일은 일어나지 않고 그는 다시 자리에 조용히 앉는다.
마스크를 빼고 거리를 걸으니 눈치가 보이고 입이 덥다. 마스크가 답답한 줄만 알았더니 햇빛을 막아주기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믿으라던 아저씨는 어디 갔는지 사라졌고 두 중년 여성이 대신 그 자리에 양산을 들고 서 있다. 바람이 코로 들어온다. 은행 볶는 듯한 냄새가 아주 옅게 코로 들어온다. 매연 냄새까지 들어오기 전에 나는 다시 마스크를 쓰고 지하철역으로 들어간다.
계단을 내려간다. 배와 무릎에 반응이 온다. 라켓 스포츠로 불균형하게 단련된 몸은 꼭 이렇게 한쪽 무릎에만 통증을 선사한다. 크론병 환자의 위장은 언제나 존재감을 드러낸다. 염증성 장질환 환자는 염증을 달고 산다. 아픈 배와 함께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2번 출구와 붙어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점자유도블록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이어져 있다.
꽃무늬 치마를 입고 보라색 모자를 쓴 할머니 한 분이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간다. 함께 탄 다른 사람은 엘리베이터 내부에, 문의 맞은편 벽에 설치된 볼록거울로 자기 얼굴을 확인한다. 거울을 꼭 후진할 때만 쓰란 법은 없다. 엘리베이터든 후면의 볼록거울이든,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설치한 것들은 다른 이들에게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문은 느리게 닫힌다. 거울 보는 이의 일행은 닫힘 버튼을 연신 누른다.
문이 닫힌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인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나도 멈추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면 나도 움직인다.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면 나도 추락할 것이다. 기계와 나는 함께 움직이고 함께 고장 나는 운명이다. 1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 어쩌면 비가 쏟아질까?
[쏟아지는 빗소리] 이곳의 붉은 바닥은 평평하고 꽉 막혀서, 비가 갑자기 쏟아지면 많이 첨벙거릴 것이다. 한번은 친구들과 비 오는 날을 주제로 글을 써보자고 했었다. ‘표준’과 어긋나게 걷는 이들이나 바퀴를 굴리는 이들은 비 오는 날에 유독 힘들다. 옷이 더 많이 젖고, 옷이 젖는 걸 피할 길도 없다. 아무리 기계가 발전했다지만 휠체어든 보청기든 기계는 기계다. 빗물을 좋아할 리 없다. 빗소리가 크면 말소리도 잘 안 들린다. 나처럼 아픈 사람들에게는 종종 비 맞는 일이 곧 아픈 일이 된다. 비가 많이 오면 나가지 않는다. 그게 최선이다. 이미 나왔다면, 맞는 수밖에 없다. 비가 오는 것은 그렇게 젖는 문제보다는 걷는 문제나 듣는 문제가 된다. [빗소리가 잦아든다]
다행히 지금은 비가 오지 않는다. 비가 올 때는 다른 냄새가 묻힌다. 누군가가 뿌린 듯한 향수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다. 베이비파우더 냄새가 스친다. 다양한 향의 사람들. 또한 다양한 바람의 사람들. 저마다의 냄새가 있듯이 저마다의 바람이 있다. 길을 걷는 이들은 각자 자신의 속도로 몸 주변에 바람을 일으킨다. 아파서 몸이 느려진 이후 나는 그런 바람 하나하나를 느끼며 길을 걷는다. 한 명씩 대화하면 다 다른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지만, 거리에 사람의 소리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사람들은 다양한 얼굴과 냄새와 바람과 몸짓과 마스크로 등장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원래 이 근처에서는 달고나 냄새와 호떡 냄새가 났다. 지금은 둘 다 없다.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부재는 묘하게 내 코에 허전한 흔적을 남긴다. 감각은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다시 감각이 된다.
다시, 장애인문화예술원 건물 앞. 인도와 이 건물 바로 앞의 길은 미세하게 달라서 들어올 때 약간 바퀴가 덜컹거린다. 인도도 그렇게까지 매끄럽지는 않지만 다른 곳보다는 조금 낫다. 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경비노동자 분이 더 신경 쓰실 일을 안 만들 수 있다. 아, CCTV로 보실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선을 피해 엘리베이터를 탄다.
2층입니다. 앞문이 열립니다. 다시 그 청결한 향이 가득하다. 이음갤러리다. 이번엔 화장실 쪽 창문 너머로 쇠로 쇠를 두들겨 무언가를 고치는 듯한 소리가 난다. 옅은 엘리베이터 소리. 내려갑니다. M층. 앞문이 닫힙니다. M층입니다. 뒷문이 열립니다. 카페에 가까워질수록 마시던 오미자에이드가 입에 맴도는 것만 같다. 핸드폰으로 메모를 하며 걸으니 손목이 아프다. 면역억제제를 먹는 자가면역질환자에게 관절이나 근육 통증은 익숙하다.
떠나기
뒷목과 옆얼굴을 덮는 검은 머리, 바지, 티셔츠, 카드지갑 목걸이, 마스크, 손목시계, 에어팟 2세대, 가방
카페에 돌아옴. “어서 오세요” 자리에 앉음. 한 직원은 동료와 인사를 나누고 퇴근. 방금 자리를 잡은 사람은 바닐라 라떼 아이스를 주문. [커피 기계 작동음] “시리야, 이거 무슨 노래야?” <Sweet Dreams, My Dear>. 나는 짐을 챙겨 나감.
마스크 안에 잔향(殘香). 귀를 채운 음악 안에 잔향(殘響). 손목과 어깨를 감싼 무게를 느끼며 거리를 보는 시선에 잔상. 오가며 남은 감각들이 벗어두었던 것들에 전이. 흔적을 남기는 일, 혹은 흔적을 계속해서 되새기는 일, 그럼으로써 그 흔적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몸으로 살아가는 일.
이 글을 읽고, 이곳의 작품들을 보고, 이 갤러리를 나가서 집으로 돌아가는, 공간을 오가는 당신의 마스크, 티셔츠, 바지, 어깨, 손목, 코. 당신의 오감, 당신의 감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