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그것도 각자도생만이 유일한 목표인 것 같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익숙한 대답은 분노와 연대다. 부정의를 목격한 사람들의 분노가 연결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분노가 어떻게 연결될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인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후마니타스)는 여기에 힌트를 제공한다.
일상적인 경험들과 감정들 안에서 분노와 연대, 나아가 혁명까지도 재정의해내는 로드의 통찰은 그가 흑인이라는 의자에도, 여성이라는 의자에도 마음 편히 앉을 수 없는 흑인 여성이라는 사실과 관련된다. 인종차별에 맞설 때는 흑인 남성들과, 성차별에 맞설 때는 백인 여성들과 충돌했던 로드에게 연대는 근본적으로 서로 간의 해소할 수 없는 불일치를 끌어안고 만들어 나가는 불안정한 ‘우리’에 관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축적되는 분노조차 무언가를 파괴하는 힘이나 감정이 아니었다. 로드는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여성들로부터 분노가 “우리들 사이의 왜곡된 관계를 슬퍼하는 감정이고, 그 목적은 변화”라는 정의를 이끌어낸다(221쪽). 분노는 함께 싸우고 싶은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로드에게 분노는 동지들, 동지가 되고 싶은 이들을 향한 것이고, 그렇기에 연대를 만들어나가는 원동력일 수 있었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들, “평범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그런 일들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으로 혁명을 정의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혁명은 단번에 일어나는 대규모의 물리적 저항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경계를 늦추지 않는 노력”이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차이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248∼250쪽). 차이로부터 나오는 분노를 연대로 전환하기 위한 매 순간의 분투다. 혁명은 적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지키는 것이다.
해소되지 않는 문제만 가득해 보일 때조차도, 우리는 이미 혁명을 하고 있다. 로드는 자신의 백인 여성 연인과의 관계를 통해 “사랑은 쉽고 단순하며 받아들이기 편한 것들에만 안주하지 않고 오랜 세월 힘써 노력하고 서로 대결하면서 다져진 것”이라고 설명한다(315쪽).
너무나도 다른 우리가 서로를 지키고 끈질기게 함께하기 위한 실천. 로드는 이것을 혁명이라고,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러니 사랑하자. 끈질긴 사랑은 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