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10분. 스타필드 1층 스타벅스에서 친구를 기다린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메시지와 알림 등이 모조리 버거워서 인스타 비활, 카톡 계정 삭제를 했더니 조금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예전에 산하와 병재와 이곳에서 밥을 먹은 것이 떠오른다. 1년에 두 번 정도는 화정에 병재 생각을 하러 간다. 굳이 가지 않아도 생각은 하지만… 요즘은 또래를 떠나 보낸 경험이 나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이 이별로 이별이 상실로 구체적인 맥락을 잃고 치환되면서 생겨나는 폭넓은 불안과 두려움에 대해 생각한다. 어제는 상담을 잡았고 그 일정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숨통이 트인다. 오늘은 내가 제일 아끼는 친구 중 하나와 영화를 볼 것이다. 스타벅스는 프리미엄조차 아메리카노는 맛이 없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근교’의 스타필드 같은 공간에 대해 생각한다. 살아가는 일상 구석구석을 개선할 여지 없이 자본의 매끄러움에 도취시켜 사람을 마비시키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땅값, 부지, 부동산, 아파트, 스타필드, … 도시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숨 막히는 공간들만이, 돈을 쓰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공간들만이 늘어갈 것이다. 서울에 사는 주제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치라니. 앨라이의 과도한 열정…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치나 위선을 포기하면 진정성도 없을 것이다. 무엇을 읽고 쓰고 말하는지는 사실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디서 살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을 어디에 쓰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타고 … 성찰이 아닌 관찰에 대해 계속 강조하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자아성찰만 할 줄 아는 무능한 엘리트 같은 것이 되고 싶지는 않다. 특권에 기대어 생존할지언정 특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의 삶과 열정을 짓밟는 엘리트가 되고 싶지는 않다. ‘이미 엘리트’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위선을 견디지 못해 아무것도 안 하고 냉소나 자조에 빠지는 무능한 엘리트가 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뭐라도 한다. 단순한 일이다. 우리는 언제나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어떤 힘이 왠지 다시 느껴지는 것만 같다. 지난 1년 나는 어느 때보다도 긍정적으로 살았다. 생산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 ‘성공’과 ‘승리’라는 단어를 종종 입에 올리면서. 물론 나는 우울과 실패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지난 1년이 내게 남긴 힘을 붙들 것이다. 다만 그 힘을 오랫동안 수선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은 가장 와닿아서 기억에 남아 있는 영화 대사 중 하나다. 스파이더맨이던가. 큰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좌절과 수치심이 따르므로 큰 힘에는 좌절과 수치심의 가능성 또한 따른다. 좌절과 수치심으로부터 멀리 살아가는 이들은 책임과 양심을 내다 버린 것일 뿐이다. 놓으면 안 되는 것들을 놓지 않기 위해 나는 성공도 실패도 행복도 수치심도 수선하며 살아가야 한다.
생각하는 대로 사는 일은 쉽지 않고 매번 실패로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그 와중에 성공과 기쁨 들이 남는다. 그것들을 붙잡고 조금씩 다르게 살아볼 수 있게 된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낸 순간들을 늘리면서 사는 대로 생각하는 일 또한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다른 상상이 아니라 다른 삶과 세계가 필요한 거다. 상상은 그만.
숨통이 트이니 글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미룬 마감이라도 기필코 맞춘다.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