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조건의 변화는 언제나 그 새로운 경제적 조건이 특정한 방식으로 작동하게끔 하는 문화적 조건의 변화와 연결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 ‘국가 경제에 1인분의 기여를 하는 국민’을 효율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젠더 역할론이었다.
효율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국민을 각자의 개별성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동질적이고 따라서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통치 가능한 통계적 대상으로, 즉 ‘인구’로 보아야 했다. ‘사람’은 국가 시스템 내에서 살아가지만 결코 그 시스템 안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고유한 인격체이다. 그러나, ‘인구’란 국가에 속하며 국가가 요구할 시 언제든 필요한 영역에 필요한 만큼 동원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다. 인적 자원으로서의 인구 관리의 핵심은 국가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그 수를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전후 한국 사회에서 인구를 관리하고, 이를 통해 경제 성장에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는 기본적인 단위가 바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꾸린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