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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의 새벽: ‘남자구실’과 낡은 꿈의 불침번

발행처
문학과지성사
간행물
문학과사회 하이픈
분야
학술
인문
사회
대중문화
젠더
페미니즘
퀴어
비평
노동
분류
매거진 기고
권호
151
발행일
2025/09/05
* 이것은 편집을 거치기 이전 원고이며, 별도의 단행본에 수정, 보완되어 실린 관계로 서문만을 공개합니다.
“서울의 끝자락 지하철 4호선 종점 상계역에서 신혼을 시작한 어느 부부가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사회의 중심에 다가가고자 덜 입고 덜 쓰면서 자식 교육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아이는 국비 유학생이 되었고 거대 정당의 대표까지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공정한 대한민국을 신뢰하며 대통령 후보로 나섰습니다. 이 이야기는 저희 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어야 합니다.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자고자 하는 애틋한 마음, 그것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탱한 정신입니다. 이준석은 이 전통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자녀 세대의 미래를 빚으로 당겨서 가불해 쓰자고 얘기합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 이준석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건전한 정책으로 기회의 사다리를 지켜 다음에는 여러분의 자녀와 손주들이 이 자리에 서는 꿈을 지켜내겠습니다.”
6월에 있었던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단연 가장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두 거대양당의 후보가 아닌, 개혁신당의 이준석 후보였다. 무수한 보도들 안에서 이준석은 2030 남성의 보수화 내지는 극우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아이콘처럼 등장했다. ‘청년 정치인’으로 정치판에 등장하여 소수자에 대한 증오선동으로 미디어에 자주 등장한 그는 2030 남성을 유권자로 창출하는 데 분명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는 ‘기득권이 아닌 새로운 정치’, ‘소외받는 남성들’이라는 두 축의 이미지 위에 자신의 가치를 구성했다. 전자에서는 ‘청년’을 위한 연금 개혁, 후자에서는 구조적 성차별의 부정에 근거한 여성가족부 폐지 등이 중심에 있었다. 그는 ‘이제는 성차별이 없는 새로운 시대’를 기정사실로 삼는 ‘새로운 정치’를 제시하는 데 힘을 쏟는 듯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앞의 인용문처럼 이준석이 개인의 성공담과 기회의 공정을 가족에 대한 전통적 규범 안에서 연결했다는 사실이다. 가족의 투자와 개인의 노력으로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낡은 꿈’으로의 유턴은 ‘공정한 기회’에 접근하기 위해 가족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질문하지 않는다. 기성세대와 자녀 세대의 관계를 연금을 통한 소득의 가불로만 갈음하여 자산의 상속이라는 분배의 문제는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세대는 현재적인 문제로, 성차별은 구시대의 유물로 구성되며, 역설적으로 자산 불평등은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채 남아 ‘기득권’의 지위는 안전하게 보존된다. 이처럼 이준석의 ‘새로운 정치’에서 공정과 능력주의, 가족주의, 성차별의 부정은 서로를 계속해서 강화하는 순환 고리를 이룬다. 나는 ‘2030 남성’이라는 범주의 짧은 계보와 그것이 발휘한 효과, 그리고 그러한 효과를 가능하게 한 조건인 ‘좋은 삶’을 다루고자 한다. 이때 이준석이 주거와 일자리의 지독한 불안정과 깊이 연관된 청년들의 불안과 좌절을 여성에 대한 증오와 연결할 수 있었던 ‘새로운 정치’의 순환 고리가 가부장, 혹은 ‘남자’라는 낡은 꿈으로 수렴한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