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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할되고 붕괴되는 것을 일러 태어난다고 하는 게 아닌가

발행처
한겨레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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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학술
인문
사회
장애
페미니즘
퀴어
서평
분류
일간지 기고
권호
발행일
2025/01/10
정쟁이 국가를 혼란에 빠뜨린다며 탄핵을 멈추라는 이들. 수많은 사람의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광장에서도 여전히 ‘탄핵부터’를 외치는 이들. 정반대처럼 보이는 두 입장은 사실 같은 체제를 보호한다. 지금 당장 길거리에서, 가정에서, 축사에서, 일터에서, 크레인 위에서 죽어가고 저항하는 존재들의 입을 막는 체제. 이미 오래전에 썩어서 흙이 되었어야 할 체제. 그것은 속은 부패했으나 겉만 번드르르하게 유지한 채 여전히 세계의 생명력을 착취하고 있다.
‘분해의 철학’은 발전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썩지 않는 것을 생산하고 소비하며 세계를 파괴하는 인식론에 대한 급진적 비판을 담은 책이다. 집회에 나갈 때마다 이 책이 떠올랐다. 구더기가 썩은 살을 먹고 흙으로 만들어야 새 나무가 자라나고, 고장 난 기계는 해체해야 고칠 수 있듯이, 모든 죽은 것은 분해되어야만 다음 생을 살아간다. 분해는 무너짐으로써 새로워지고 지속되는 것이다. 광장의 ‘분할’도, 국가의 ‘붕괴’도, 분해의 과정이다. 변화를 혼란이라 부르며 가로막는 말들은 분해를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한국 사회에 쌓인 부패에 연루되어 있다. 이제는 분해자로서의 본분으로 돌아간다. 무수한 이름을 가진 우리는 세계를 다시 만나기 위해 오래전에 썩어버린 것들을 한 점도 남김없이 먹어치울 것이다. 나와 내 주변에 스며든 죽음들로부터 출발해서 망가진 세상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할 것이다. 광장 안으로부터 울려 퍼지는 결의에 찬 절규는 그 죽음들에 대한 애도일 것이다. 죽은 것이 썩어 사라지고 새 생명이 태어나고 있다. 자, 분해의 시간이다.
분해의 철학: 부패와 발효를 생각한다 / 후지하라 다쓰시 지음, 박성관 옮김, 사월의책(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