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환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서사 구조를 통해 몸과 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눈이 부시게>에는 여러 모로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습니다. 비록 제가 학회를 앞두고 드라마를 몰아서 시청하여 이해가 부족할 수 있지만, 발표에서 짚어주신 점들을 통해 대중문화가 질병과 장애를 재현하는 시도들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혜자의 알츠하이머병은 기억으로 표상되는 시간에 대한 문제인 동시에, 병원에서의 치료와 관리가 가능한 문제이고, 가족의 돌봄 또한 요하는 문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의료인류학자 아네마리 몰은 한 병원에서 다리 정맥의 동맥경화증이 다루어지는 방식을 쫓아가며, 질병이 하나의 실재가 아니며, 매 순간의 다양한 실천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몰, 2022). 이를 병원과 의료적 실천 밖으로도 확장할 때, 혜자의 알츠하이머 병은 누구와 있으며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다소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혜자의 알츠하이머병이 시간, 돌봄, 치료라는 세 차원의 실재로 드라마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의 전체 서사는 혜자의 시간과 기억을 중심으로 하는데, 어디까지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어디부터가 왜곡된 것인지 시청자로서 알기 어려운 극의 구성은 알츠하이머 병의 주요 증상 중 하나인 기억 저하와 작화증을 서스펜스 요소로 활용하는 듯합니다. 이는 한편으로 실제와 허구가 복잡하게 뒤섞여서 분간하기 힘들어지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입장 안으로 들어가고자 시도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느끼기에 드라마의 결말은 드라마의 전반적인 전개를 다소 해치는 듯합니다. 발표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을 두 명의 내레이터로 삼아 서술자의 신뢰도를 이야기하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전지적인 카메라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의 많은 부분은 실제와 허구를 뒤섞어서 시청자를 혼란으로 유도하지만, 전지적 카메라는 무엇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하나하나 보여주며 ‘사실은 이러했습니다’라고 해설해줍니다. 여기서 드라마의 대부분을 이끌고 가는 소재인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 또한 죽도록 과거를 바꾸고 싶었던 혜자의 마음과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인 작화증이 만나는 지점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즉, 작가는 카메라를 통해 바디 스와프라는 아이디어가 드라마 속에서도 ‘현실’이 아닌 ‘허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결말부에서 드라마는 알츠하이머병에서 ‘시간’이라는 차원에서 나타나는, 혜자가 만들어낸 실재를 소거하고, 병원 안에서의 혜자를 주로 비추어 치료와 돌봄의 차원을 강조합니다. 드라마는 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꽤 명확히 긋고, 진실은 카메라와 대상의 몫으로, 허구는 알츠하이머병의 증상으로 남깁니다. 알츠하이머병이 환자의 삶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고 흔히 불린다는 점에서, 이 허구가 혜자의 기억들을 재조립하고 변형한 작화증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기존의 이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것이 “기억의 파편을 재조립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능동적인 서술 행위”로 불릴 수 있는지에 대해 다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을 겪고 있는 제 할머니의 머릿속에서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고, 사건들의 순서는 뒤바뀌어 있고, 자신의 필요와 욕망에 따라 (자신이 의식할 수 없는 형태로) 사건들은 재조립되어 있었습니다. 기억력은 배터리처럼 0에서 100의 정도로 표시되어 경험 세계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사안에 모두 다른 정도와 형태로 적용되는 듯합니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겪는 기억의 비일관성이란 기억 ‘저하’라는 단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꽤나 복잡한 역동을 지니고 있는 듯합니다. 저의 기억과 우리가 갖고 있는 다양한 서류들과 할머니의 기억이 불일치할 때 무엇을 진실이라고 말해야 할지, 할머니의 어떤 말을 그대로 듣고 긍정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의 문제는 할머니가 다른 이들과의 관계, 치매안심센터와의 관계, 성당 공동체와의 관계에 어떻게 개입하느냐의 문제가 되고, 이는 결국 할머니의 알츠하이머병이 할머니라는 사람을, 그리고 우리를 어떤 존재로 만들어내느냐의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이지은, 2020).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누이였고 어미였고 딸이었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드라마의 마지막 회는 혜자가 직접적인 발화자로서 시청자에게 건네는 조언 내지는 교훈의 형태로 마무리됩니다. 혜자가 자신의 삶을 긍정하면서 타인에게도 그 자신의 삶을 긍정하길 제안하는 이 대사는 알츠하이머병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질병 긍정 혹은 수용의 서사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자신의 질병이나 장애에 대한 ‘긍정적 태도’는 질병 혹은 장애 수용의 증거로 이해되고 있지만, 현실에서 질병/장애의 수용과 부정은 사실 그렇게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수용은 자주 체념의 연장선이며, 체념에는 언제나 부정이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긍정적 태도에 초점을 두는 일은 오히려 질병과 장애의 실제를 지우는 ‘부인 전략’(클레어, 2020)에 가깝습니다.
기억에 생기는 혼란은 당사자를 넘어 그와 연결된 주변인들에게도 혼란이 됩니다.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허구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을 긍정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는 그러한 점에서 질병과 돌봄의 실제보다는 질병을 가진 이에게 사회가 원하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수용을 긍정적 태도로 환원하는 일은 ‘극복’으로부터 ‘수용’을 구출하고자 노력한 질병과 장애 담론의 노력을 외면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질병의 실재를 ‘긍정의 대상’과 ‘치료의 대상’이라는 차원으로만 남겨두는 이 드라마의 결말은 기억과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경험되는 혼란에 있었던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다른 이해의 가능성을 차단하며 질병의 실재를 축소하는 듯합니다. 당사자들이 자신의 질병이나 장애를 정체성으로 선언할 때, 그 이면에는 언제나 한 순간도 끝나지 않는 자기 몸과의 타협과 협상이 존재합니다. 정체성이 블랙박스가 될 때, 질병과 장애의 실제는 지워질 수 있습니다.
“문제의 해결을 꿈꿀 수 없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일상은 지속되어야 했고, 아직 붕괴되지 않은 무대는, 폐기되기보다는 수선되고 보수되는 방식으로 유지되었다.”(이수유, 2018: 302)
개선의 가능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알츠하이머병과 함께하는 일상은 여기저기 금이 가고 깨어지지만, 그 일상을 버리고 떠날 수 없을 때, 긍정보다 현실적인 선택지는 불가피한 수선과 보수에 가깝습니다. 질병을 긍정하라는 드라마의 교훈은 자주 엉망진창이고 혼란스러운 질병의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낭만화로 보이기도 합니다. 거짓말하기, 거짓말을 바로잡기, 기억 교정하기, 손상된 기억을 그대로 두기, 다른 관계망 안으로 할머니를 밀어 넣기와 같은 수선과 보수의 지난한 과정 안에서 우리는 때로 스스로 존엄해지기 위해 타인의 존엄을 희생시키기도 하고, 타인을 존엄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나의 존엄을 희생시키기도 합니다. 존엄이 상호적인 것(김현경, 2015)이라는 이야기가 무색하게도, 돌봄의 현장에서 존엄은 종종 제로섬의 문제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그러한 수선과 보수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며,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지일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이 드라마의 서사 중 혜자의 작화증과 기억 저하를 능동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이해하는 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것이 현실에서 환자뿐 아니라 가족, 돌봄 인력, 의료 인력까지도 포함하는 당사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발표자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여기서 논평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김현경. 2015.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몰, 아네마리. 2022. 바디 멀티플. 송은주·임소연 역, 그린비
이수유. 2018. 치매 발병 후 부부관계와 질병의 공동 경험. 한국문화인류학 51(3), 279-308.
이지은. 2020. ‘연명’이 아닌 삶: 중증치매에서 경관급식 실행의 윤리적 문제들. 과학기술학연구 20(3), 1-29.
클레어, 일라이. 2020. 망명과 자긍심. 전혜은·제이 역, 현실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