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맥락 없이 누군가 한숨을 쉰다. 다른 이들은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된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기말 페이퍼를 쓰는 기간과 평상시를 가리지 않고. 이상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우리는 왜 한숨을 쉬는 걸까? 무엇보다도, 왜 아무도 한숨의 이유를 묻지 않는 걸까?
다른 나라의 사정은 모르지만, 한국에서 대학원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밈이다. DBpia에서 연재하는 ‘듀선생’의 대학원 이야기부터 도시괴담처럼 흘러다니는 대학원생의 피해 사례들까지. 오죽하면 2020년에 ‘근로자’의 범위를 수정하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을 두고 ‘사람’이 ‘사람(대학원생을 포함한다)’로 수정되었다고, 드디어 대학원생도 사람 취급을 받게 되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돌았다. 이상하다. 한국처럼 공부와 학력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가방끈이 가장 긴 학생인 대학원생은 왜 인간 취급도 못 받는다는 자조가 가득한 걸까?
대학원생 인권은 2010년대 대학원생이 급증하고 대학원에서의 인권침해 사례들이 공론화되기 시작한 20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의제화되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주요 일간지 언론보도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시기 동안 공론화된 대학원생의 폭력 및 인권침해 사건은 모두 교수에 의한 사건으로 성희롱・성추행과 폭언・폭행 등 폭력사건(59%)이 가장 많았으며 그 외에 인건비 횡령(20%)이나 논문 착취(10%), 기타 부당한 업무 지시, 금전 요구, 부당한 성적 부여 등 순이었다.⁽¹⁾ 2014년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와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대학원생 연구환경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으며 그 핵심에는 교수와의 위계적인 관계가 있었다.⁽²⁾
이러한 연구들과 보도들은 꾸준히 있었고, 6년 전에 이러한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출범하기까지 했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작년 말,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와 사회발전연구소에서 서울대학교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학원 재학 중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사례는 소속 계열에 따라 적게는 12% 정도부터 높게는 25% 정도로 밝혀졌다. 폭언, 욕설뿐 아니라 기합, 구타까지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갑질, 집단 따돌림, 배제, 소외에 대한 호소도 컸다.⁽³⁾ 4년 전에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대학생 및 대학원생의 절반 이상이 인권 침해를 경험했다고 발표했다.⁽⁴⁾ 인권 침해의 주체로는 교수가 많이 지목되지만, 교수뿐 아니라 선배나 연구실 동료들 또한 모두 관련되어 있는 문제다.
이처럼 대학원생들의 고통은 공부나 연구 자체의 어려움보다도, 대학원생들 사이, 그리고 대학원생들과 교수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사건들에 기인한다. 공부나 연구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문제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고, 그것을 제대로 해결할 수 없게 하는 대학원의 구조다. 대학원은 폐쇄적인 공간이고, 지도교수는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며, 너무나도 작은 공동체인 나머지 동료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면 제대로 해결하기도 어렵다. 학교 내의 기관에 신고를 한다고 하더라도 익명성을 보장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서 신고 절차를 밟는 경우도 드물다. 신고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이러한 이야기는 많은 이에게 익숙하다.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원의 총학생회는 대학원생 실태 조사와 좌담회를 열어서 대학원생들이 겪고 있는 인권 침해 사례들을 수집한다. 성차별과 거기로부터 출발한 폭력들, 연구비 중 제자들의 몫을 갈취하는 교수들, 주말이고 공휴일이고 교수가 연락하면 연구실로 달려가는 대학원생들, …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사례들은 여기서도 반복된다. 그럼에도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피해 사례나 그것이 해결될 수 없는 이유를 열거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가까운 일상 안에서 출발하여 함께 고민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학원생들이 모여서 대학원 안팎의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 중에서 특히 사소하거나 사적인 문제라고 여겨질 법한 일들을 깊이 파고들어 학계의 문제를 비판한 하나의 논문을 소개하고 싶다. 2020년, 학술지 『공간과 사회』는 「지리학계에 보내는 편지: 지리학과를 떠난 두 여성 연구자의 이야기」를 게재했다. 이 논문은 두 명의 여성 연구자가 지리학과 대학원에서의 경험을 상세히 분석함으로써 성차별이 얼마나 미세하게, 또 깊숙하게 연구실 안팎의 관계들에 스며들어 있는지, 혹은 그러한 관계들이 어떻게 성차별에 근거하여 구성되는지 보여준다. 여성 연구자가 연구실에 앉아 있기 어려운 분위기, 연구실을 자주 떠나 있다는 것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동료들과 교수들에 의한 따돌림 등에 의해 연구실은 여성 연구자에게 덫으로 가득한 미로가 되고 만다.⁽⁵⁾
이러한 장면들은 대학원 안의 권력관계에 대해 교수-학생 사이의 익숙한 구도를 넘어서는 고민을 끌어낸다. 연구실 안의 공간 배치부터 연구자들 사이에 직간접적으로 오가는 감정 표현들과 같은 아주 작은 요소들의 연결망이 여성 연구자에 대한 배제를 만들어낸다는 이 논문의 주장은 한편으로 성차별이 그만큼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 ‘사소한’ 영역에서부터 성차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것은 비단 성차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학원생의 인권 침해 일반에 대해서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우리는 가장 ‘사소한’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난 학기, 내가 다니는 대학에서는 대학원생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그곳에서 주로 다루어진 것은 대학원생의 휴식 문제였다. 물론 지금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제대로 쉴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쉴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게 되는 경로는 제각기 다르기에 중요한 것은 바로 그 구체성이다. 돈 문제 또한 모두가 겪고 있지만, 대학원생이 그것을 경험하는 특정한 경로가 존재한다. 대학원생들은 종종 조교 자리를 두고 경쟁한다. 행정조교나 사무조교, 혹은 연구조교나 수업조교가 되면 등록금의 일부나 전액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조교가 된 이들은 일이 너무 많아서 학업과 병행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조교가 되지 못한 이들은 학교 바깥에서 불안정한 알바 자리를 찾는다. 이 또한 학업과 병행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나의 동료 중 하나는 대학원에 진학했다가 등록금과 생활비 때문에 장기 휴학 중이고, 다른 동료는 휴학하고 일에 전념하여 빚을 다 갚고 돌아왔다. 그는 이제 다음 학기 등록금을 위해 새로운 빚을 낼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료는 수료 상태가 되어 원래 하던 조교 자리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대학원생이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은 학부생에 비해 턱없이 적고, 그나마도 졸업이 가까워지면 받을 수 없다. 그러니 연구비나 장학금을 줄 수 있는 교수, 연구나 조교 업무의 과정에서 계속 마주쳐야 하는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논의하고 해결하기는 어렵다. 학업 때문에 취직할 수 없고, 학부생이 아니라서 받을 수 있는 지원도 부족한 대학원생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대학원의 폐쇄적 구조와 맞물려 ‘대학원생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원생 문제’는 인권과 돈과 제도적인 문제가 모두 얽힌 지저분한 문제가 된다.
“흐르는 눈물의 이유를 애써 물을 필요는 없지.”
부산의 밴드 ‘보수동쿨러’의 노래 <모래>의 한 구절이다. 물론 눈물의 이유를 묻는 것은 자주 누군가의 치부를 건드리거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다. 그러나 눈물의 이유를 애써 묻지 않는 것처럼, 연구실에서 만성적으로 터져 나오는 한숨의 이유까지도 애써 묻지 않는다면, 정말 우리는 괜찮을까. ‘나도 그 맘 다 알지, 대학원생이면 다 그렇지, 우리가 다 그렇지 뭐.’ 이렇게 생각하고 침묵하는 대신, 서로의 한숨을 밈처럼 웃고 넘기는 대신, 우리는 서로에게 물어야 한다. 너 정말 괜찮냐고, 무슨 일 있는 거냐고.
모두의 고통처럼 보이는 것들은 사실 각자의 삶 안에서 너무나도 고유하고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각자의 고유한 고통을 손쉽게 ‘대학원생의 불안’으로 전환하고, 그것을 빠르게 우스갯소리로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무언가가 우리 각자의 삶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내는 고통을 서로가 알아차리고, 거기에 응답하는 일이다. 지극히 사소한 대학원의 일상 속에는 크고 작은 불행들이 겹겹이 쌓인다. 불행들이 쌓여 불안이 되고, 불안은 몸을 거쳐서 한숨이 된다.
한숨에 주목하자. 함께 연구하고 생활하는 동료로서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은 마음이나 다짐으로만 완수될 수 없다. 아니, 마음이나 다짐 또한 행위이고, 서로를 관찰하고 돌보는 실천이다. 과학철학자 도나 해러웨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함께하는 동료로서의 책임(responsibility)이란 일상 속에서 서로에게 응답하는 능력(response-ability)을 계속해서 기르고 훈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오는 한숨의 이유를 애써 물어야 할 때, 우리는 어떤 표정과 말투와 손짓으로 말을 건네야 할까?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주
⁽¹⁾ 김소영,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 연구』, 한국과학기술원, 2018, 26~27쪽.
⁽²⁾ 김성수의원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2018년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②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2018, 11~12쪽.
⁽³⁾ “욕설·구타, 차별당하는 서울대 의대 대학원생들 "인권침해 실태 심각"”, <매거진한경>, 2023-11-09.
⁽⁴⁾ 장다혜·추지현·김석호, 『대학 내 폭력 및 인권침해 실태와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9
⁽⁵⁾ 정희성·조규혜, 「지리학계에 보내는 편지: 지리학과를 떠난 두 여성 연구자의 이야기」, 『공간과 사회』, 30(2), 2020, 1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