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접근성: 제약의 안팎에서

분류
포럼/라운드테이블
역할
전시 토크 패널
기간/날짜
2024/01/20
주관
합정지구
행사명/채널명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그리고 우리*는
* 해당 토크의 보완된 버전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직원 대상 특강에서 진행되었습니다.
* 관련 문제의식은 아래 인터뷰에서도 구체화되었습니다.
"물론 어떤 분야에서는 전문성이 중요하고 그것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사실 저에게 접근성은 영화나 건물에 관한 것 이전에 제가 SNS에 사진을 올릴 때 대체 텍스트를 어떻게 입력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되는 것이기도 했었어요. 시각장애인 친구가 제 사진을 눌렀을 때 '사진'이라고만 뜨면 안 되잖아요? '사람으로 추정되는 2명이 있음' 정도로 나오는 게 전부거든요, 아직은. … 전문성과 접근성이 결합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실, 대학 안에서 장애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할 때부터 쭉 이어져 온 것이기도 합니다. 모든 단과대학과 총학생회가 접근성과 관련된 문제를 저희한테 외주 맡기다시피 하는 거예요. … 그랬을 때 각 부처는 변화하지 않는 거죠. '자신들은 고민할 필요가 없고 특정 전문가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은 바뀌고자 하지 않는 건데,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측면에서 접근성은 많은 부분 비전문가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가 할 수 있는 접근성이 필요하고 접근성 자체가 접근 가능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매뉴얼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졌던 게, 물론 국가 표준이 아직 있지는 않으니까, 단체마다 조금씩 다른 매뉴얼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떤 단체에서 나온 화면해설에 관한 매뉴얼을 봤는데, 거기에서 가장 납득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가, 화면해설을 작성할 때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을 최대한 배제하고 작성해야 한다는 지점이었어요. 왜 그렇게 썼는지 물론 이해는 합니다만, 문제는 그렇게 했을 때, '화면 절반은 까맣고 나머지 절반은 바다가 보인다' 이런 식으로 화면의 기본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게 되잖아요? 화면해설이 정보전달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 '시각적으로 혼란스러운 장면이 나오는데 말로 어떻게 전달해야 동등한 미적 체험을 할 수 있는 걸까?' 생각이 들어 매뉴얼에서 벗어나는, 어떻게 보면 이상해 보이는 접근성을 시도한 것은 그런 의도에서 나왔던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저희가 시도한 접근성은 더 나은 이해를 위한 게 아니라 동등한 혼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차원인 것 같아요.
사실 접근성은 1과 0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다양한 스케일이나 스펙트럼의 문제로 이해하려는 건 단지 공간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힙한 공간, 예쁜 공간에도 들어가고 싶은 당사자들의 욕망이 얽혀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자본에 의해서 완비되어 있는 깔끔한 접근성보다 이런 영세한 차원에서의 접근성을 훨씬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했을 때 오히려 접근성을 더더욱 정치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영세한 공간에서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이라던가, 지원 사업이라던가, 아까 말씀드린 접근성 조례 같은 걸 의무화한다던가, 이런 것들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작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 공간을 소유한 사람, 그런 운동을 하는 시민 단체 등이 다 같이 연합하는 연대의 가능성이 동시에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전 그런 다양한 차원에서 접근성을 0과 1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주어진 제약을 잘 탈 수 있는 광대가 되어야 하는가, 제약의 위아래를 마음대로 기어다닐 수 있는 벼룩이 되어야 하는가?'는 <기묘한 이야기> 시즌 1에 나왔던 은유를 써 본 문장이었어요. … 줄을 타는 광대는 엄청나게 많은 훈련을 해서 줄 위에서 자유롭게 뛰놀고 하잖아요? 근데 그게 정말 자유로운 것인가? 벼룩을 생각하면 벼룩은 아주 작고 약하고 가볍기 때문에 그 줄 위아래로 기어다닐 수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아까 토크 중에 이야기했던 전문성에 관한 이야기랑 겹치는데, 전문가는 광대라고 생각해요. … 벼룩은 그냥 그렇게 생겨 먹은 존재인 건데, 그걸 비전문가라고 생각해 봤을 때 아무런 노력을 안 해도 된다는 게 아니라 자기의 위치에서부터 나오는 문제의식이 있는 거죠. … 줄을 타는 사람의 위치에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만 훈련 이전에 제약 자체를 거꾸로 볼 수 있는 위치가 중요하지 않나, 그런 맥락에서 좀 전문성과 별개로 우리가 그렇게 계속 주어진 제약과 접근성과 공간과 그런 것들을 비틀어보고 뒤집어보고 옆으로 기울여 볼 수 있는, 줄의 위아래 방향에서 자유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그런 맥락에서 썼던 문장이었어요." (안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