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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성

Created
2025/06/2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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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여기에 메모를 남긴다. 증명과 변명을 낸 뒤 6개월 동안 읽은 서평들이 어느 정도 쌓여 있다가, 스스로 정리해야 하는 책의 한계를 좀 더 분명하게 만들어주는 감사한 서평들을 마침 또 만난 덕이다. 그러나 아무튼 블로그의 이 카테고리는 대충 메모하는 영역이니.. 대충 쓰겠지만.
책에 대해 가장 많이 받은 피드백으로는 우진의 가정사가 너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책이 계급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 우진의 교회 경험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여기서 1,3번은 단순하게 대답할 수 있다. 가정사와 관련해서는 우진이가 대답하길 어려워 한 것도 있었고, 그걸 구태여 캐묻고 싶지 않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결국 양육 문제’로 환원되지 않길 바란 것도 있다. 그렇게 했을 때 정말로 정신분석으로만 환원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고, 가족 문제를 깊이 다루면서 그렇게 빠지지 않을 역량이 내게 있는지 확신이 없었다. 교회 또한 ‘교회 남성성’으로의 환원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있고, 독자층을 한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그러니까 가정사와 교회 이야기는 결국 내가 그것을 충분히 ‘잘’ 다룰 자신이 없어서, 빠졌다고 말해야 솔직할 것이다.
계급 문제를 다루지 않은 것,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최근 논의되는 극우화와 관련된 지점이라는 것, 그래서 정말 현재 중요한 정치경제적 문제를 회피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변명할 거리는 없기에 왜 그렇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정도로 기록을 남겨 두어야 할 것 같다. 사실 이것은 우진의 계급에 대한 서술의 문제라기보다, 내가 계급을 다루기 어려워한다는 점과 관련될 테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 설명하려면 결국 계급과 관련된 나의 감정과 경험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책의 마지막 ‘기댄 이야기들’에 쓴 것처럼 나는 꽤 풍성한 문화 자본을 갖고 자랄 수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긴 가방끈과 큰 관련이 있고. 또한 나는 우진과 같은 동네에, 그러니까 서울에서 살고 있다. 우진에 대해 서술한 것처럼 나 또한 한편으로 분명 별탈 없이 살고 있는 중산층 청년 남성이겠다. 그런 나에게 생애기획이 어려운 문제가 된 것은 아무래도 수험생활 중 진단받은 크론병과 그로 인해 변한 몸, 그리고 평생 함께할 사람이 남자일지 여자일지 알 수 없다는 것과 관련될 테다. 동시에 계급에 대한 이야기에서 내가 가장 공감했던 단어는 일라이 클레어가 <망명과 자긍심>에서 언급한 ‘혼합계급’인데, 나는 중산층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여러 조건을 통해 계급재생산이 아마 어려울 상황에 놓여 있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거의 평생을 불안정한 노동 조건을 관통해 왔다. 그러니까 대략, 불안정 학술노동자들의 아이로 태어난 것이라고 설명하면 적절하지 않을까 싶은데. 대학도 대학원도 거의 전액장학금으로 다녔다(성적장학금은 아니었다). 사실 이렇게 쓰면서도 이것이 한편으로 부끄럽다는 걸, 그리고 이것도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이걸 쓰는 것이 그저 솔직한 것이긴 하다.
서평들을 보다 보면 내가 내 글에 대해 해본 적 없는 이해를 할 수 있게 될 때가 있는데, ‘기댄 이야기들’에 대한 이해가 그렇다. 원래는 그저 내가 쓴 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책이 생산된 과정을 좀 더 투명하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컸다. 어떻게 보면 통상적으로 논문에 들어간 ‘이론적 배경’과 같은 걸 생각한 건데(그런 게 대중서에서 앞에 들어가 있으면 안 되니까), 서평들을 읽다 보니 오히려 질적연구에서의 ‘연구자의 위치성 서술’에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관점과 지식이 얼마나 국지적인 것이고 상황적인 것인지에 대한 서술이자, 그걸 통해서 이 지식/관점의 한계를 밝히는 일, 그러한 한계가 어디서 왔는지 또한 분석과 비평의 대상으로 열어두는 것. 솔직히 여기까지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서평들을 읽다 보니 이 지점을 쓰는 것이 역시 솔직한 것이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증명과 변명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고, 여기서는 계급을 매우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시키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는 무엇보다도 내 역량의 문제일 텐데.. 그 책을 쓰기 시작할 때까지 그러한 역량을 내가 키워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아니, 해야 하는 건 해야 하는 거지. 아무튼, 쓰고 보니 책에서 부족한 건 결국 다 내가 잘할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 거였다. 당연한 거지만. 다음엔 좀 더 잘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