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글을 쓰지 말아야지. 얼마 전에 망한 그 글들도 그런 이유에서 망했던 거다. 처음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너무 강했고 심지어 참고하라고 받은 글들 중 절반 이상은 이런 걸 왜 읽나 싶을 만큼 텅 비어 있었다. 대체 여기서 생각하는 좋은 글이 뭔지 감이 안 잡혀서 그 텅 빈 느낌을 따라해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했고 처참히 망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 잘하는 거에 초점을 맞춰야지 싶다. 그런 글에 억지로 맞추며 살지 말자. 잘하지도 못하고 하고 싶지도 않은데, 그냥 나는 잘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꽤 괜찮아 보였던 사람에게, 왠지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은 선배로 보였던 사람에게, 그럴싸한 기획을 가져다 준 사람에게. 그런데 피차 사람 보는 안목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 기획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 괜찮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도 여러 권의 다른 기획에서 괜찮은 작가였고 그는 또한 많은 작가들에게 괜찮은 동료였을 테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이 지독하게 안 맞았던 것으로 생각하고, 같이 일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글을 지적하는 메일의 내용은 둘째 치고 그 방식이 너무 황당하고 모멸감을 주는 것이라 며칠을 화난 상태로 지내며 무수한 나쁜 말을 속으로 삼켰는데, 그걸 여기에 일일이 적을 이유는 없지 싶다. 못되게 말하려고 작정하면 나는 아주 쉽게 남에게 오래 갈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이미 많은 날들을 후회하고 많이 참으며 산다. 그러니 자신의 위치를 돌아볼 줄 모르는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덕분에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타인에게 모멸감을 주는 글을 쓰지 않겠다는 꽤 진심 어린 다짐을 하게 되었고, 문제의 원인을 모조리 상대에게 돌리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꽤 진심 어린 다짐을 하게 되었고, 이 동네에서는 괜찮아 보이는 사람을 쉽게 믿으면 안 된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했고, 내가 작가 일을 얼마나 하기 싫었는지도 다시 한번 깨달았을 뿐이다. 환멸을 그저 견디기만 하다 보면 무감각해진다. 벌랜트의 통찰이란 얼마나 잔인하도록 정확한가! 어차피 내년까지 써야 하는 게 그거 말고도 네 권이었다. 평가 방식의 차원에서 나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는 사람들, 그래서 협력이 서로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이 되는 사람들과 일하면 된다. 나머지 모든 이는 그런 사람들로 보인다. 그렇게 서로 배우며 일하고서, 단행본을 중심으로 하는 나의 작가 커리어를 박사 진학과 함께 일단락 지으면 된다. 이 확신이 서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