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나 비평이 쌓여서 그것으로 단행본을 만드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단행본만을 위해 글을 쓰는 건, 어쩌면 올해에 계약하는 것들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적어도 확실하게 지적 성취를 이루기 전에는. 아웃풋이 아니라 인풋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고, 솔직히 어떤 편집자들이나 독자들로부터 겪은 무언가들로 인해 이 동네에 대한 복잡한 마음은 점점 더 단순해지고 있다. 현재 예정된 일들 말고는, 단행본 출판과 그로 말미암아 생기는 행사들로 돈을 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지. 그러려면 다른 업이 필요하다. 그러니 미루지 말고, 박사 준비를 차곡차곡 해나가야 한다. 이미 받은 것들 외에, 하고 싶지 않은 행사나 원고 청탁 등은 앞으로 거절할 것이다. 작가를 비즈니스 모델로 삼을 때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내게는 여전히 쉽지 않다. 5년도 간신히 잘 버텨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의 메모를 읽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이 글을 읽고 찔리는 사람은 아마 이 글에서 얘기하는 내 경험과 무관한 사람일 테다. 진짜 찔려야 하는 사람은 자기 얘기인 줄도 모르니까. 언제나 그렇듯. 아마 읽지도 않을 것이고. 어쨌든, 나는 단행본 작가로서의 삶을 머지않아 그만두고 싶다. 절필하겠다는 건 아니다. 연구와 비평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단행본, 북토크, 강연 등을 부차적인 것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새 단행본을 내서 그것으로 계속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소모적이고 해괴한 구조를 더는 견디고 싶지 않다. 출판이 사양 산업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지극히 내부적인 이유를 너무 많이 목격한다. 재생산 불가능한 구조. 책의 원재료가 되는 원고를 공급하는 작가가 노동자이자 생산자이자 판매원이 모두 되어야 하는, 그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억울함과 답답함과 르상티망과 가식과 겉치레와, … 모든 게 지긋지긋하다. 그리고 제발, 이 글을 읽는 당신만큼은 이런 내 경험에 대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아마 당신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는 짧은 시간 소박하게 일한 것에 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잘못도 했고, 많은 무례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이 지겹고 피로할 뿐이다. 더는 책 따위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
나랑 어울리지 않는 걸 바라지 않아야지. 계속 그런 걸 바라게 하는 이 동네 자체가 지긋지긋하다.